세상이야기

 

1902년 일본군은 러시아 전쟁 계획을 수립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러시아군홋카이도를 거쳐 혼슈 북부로 침공함을 막는 방어작전이었습니다. 일본 육군 8사단은 러시아군의 침공을 방어하고 물자 보급선을 확보하는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그리고 일본 8사단은 아오모리에 주둔한 5연대 2대대에 동계 산악행군을 겸한 보급로 탐사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에 2대대 병력을 중심으로 하되 1대대와 3대대에서 병력을 약간 차출하여 최종적으로 210명의 병력이 차출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작전에 임하면서 전 병력에게 혹한을 대비하도록 했는데 발에 고춧가루를 뿌린 뒤 양말을 3겹으로 신게 했습니다. 그리고 210명의 병력이 1902년 1월 23일 목요일 아침 7시경 부대를 출발했습니다. 행군 초반에는 여정이 매우 순조로웠고 날씨도 혹한기 산악훈련을 하기 적절한 추위 정도였기에 순조롭게 산을 올랐습니다.

 


하지만 오후부터 급격하게 기상이 악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산 중턱 가까이까지 올라갔는데 급격하게 추워지고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자 지휘관들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고민끝에 일단 계속 가보자는 최악의 판단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눈은 계속 더 쏟아지고 밤이 될수록 날씨는 더 추워졌으며, 병사 개개인이 휴대하던 비상식량도 다 얼어서 먹을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렇게 상황은 계속 악화되었으나 지휘부는 야간행군을 강행했습니다. 폭설과 혹한 속에서 제대로 된 보온조치 없이 휴식하고 수면을 취하다간 숙영지를 공동묘지로 만들 뿐이므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지휘부는 고민 끝에 복귀하기로 결정하였으나 눈이 하도 와서 방향이 분간되지 않는 지경이었습니다.

 


결국 길을 찾지 못한 부대는 부대원 다수가 동사할 것임을 알면서도 개활지 한 곳을 잡아 임시 숙영지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땅은 얼어붙었고 공구를 지닌 병사들은 다수가 낙오하여 그나마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였습니다. 이때의 체감 온도는 무려 영하 50도에 달했고 결국 24일에서 25일로 넘어가는 밤에 50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지휘관은 이날 아침 그나마 체력이 남았다고 판단된 병력을 특무조장 2명을 포함한 12명을 선발하여 2개 조로 척후대를 편성, 각 특무조장을 척후대장으로 임명한 후 선발로 내보냈습니다. 이들 척후대 중 1개 조는 이후 연락두절, 전원 동사했으며 다른 1개 조는 길은 찾아내었으나 민간인이나 마을을 발견하진 못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남은 생존자들도
거의 포기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그야말로 죽음의 행군이 계속되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중대원 210명 중 60~70명밖에 남지않은 상황이였습니다. 그리고 1월 26일 한명이 구조대에 의해 최초로 발견되어 구조되었지만 이미 훈련에 참가했던 210명 중 199명이 추운 혹한의 날씨에 사망한 후 였습니다. 이 사건은 평시훈련 중 발생한 사고로서는, 생존률이 고작 5%에 불과한 이례적인 대규모 참사였습니다.

 

 

그 후 이곳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마치 산을 행군하는 듯한 군인들의 모습이 목격되고 군인들의 군화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에도 많은 미스터리한 사망사건들이 발생하는 등 핫코다산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사망사고가 계속됐습니다.

 

 

사람들은 핫코다산에서의 죽음을 동사한 군인들의 원혼으로 여겼고, 핫코다산을 '저주받은 산'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일본에는 해가 지면 핫코다산에 머무르지 말라는 말이 불문율처럼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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