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1941년 12월 7일 일본 해군의 진주만 기습은 미국을 마침내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진주만을 상기하라"(Remember Pearl Harbor)는 절규는 미국인들의 애국심에 불을 붙였고, 복수심에 불타는 젊은이들이 전국의 모병소에 몰려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젊은이들 속에 아이오와주 워털루 출신의 설리반 5형제도 있었습니다. 설리번 형제들에게 진주만 습격은 더욱 충격적인 일이었는데 이들의 유일한 누이, 제느비에브의 약혼자 윌리엄 볼이 진주만에서 침몰한 전함 아이오와에 타고 있었습니다. 이미 해군에서 복무한 전력이 있는 맏형 조지(28), 차남 프랭크(26)와 삼남 조셉(23), 사남 매디슨(22), 그리고 막내인 알버트(20)까지 모두 해군에 자원 입대를 신청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미 해군 규정에는 가족은 같은 함정에 배치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맏형 조지는 해군 장관 앞으로 편지를 씁니다. "우리 형제는 언제나 함께였었고 함께 승리 할 것입니다" 편지를 받은 워싱턴의 해군성에서는 설리번 형제의 동반 입대가 멋진 선전 효과를 거둘 수 있겠다고 판단, 이를 허락 하였습니다.

 

 

그런데 1942년 11월 13일 새벽, 과달카날 해전에서 설리번 5형제가 타고 있던 주노 함은 교전 도중 일본 해군 구축함이 발사한 어뢰 중 1발에 뱃머리를 피격당했고, 수리를 위해 에스피리토 산토 항구로 철수하던 도중 일본 잠수함의 어뢰에 의해 탄약고가 대폭발, 침몰하였습니다. 철수하는 함대를 이끌던 후버 대령은 일본 잠수함이 득실거리는 바다에서의 구조활동은 무리라 판단했는지 주노의 구조를 포기하고 나머지 함대를 이끌고 그대로 에스피리토 산토 항구로 가버렸습니다.

 

 

당시 주노에서는 100여명의 승조원이 탈출했지만, 구조가 늦어진 결과, 대다수가 기아, 탈수, 상어의 공격으로 인해 숨졌습니다. 그런데 이 사망자들 중에 설리번 5형제가 모두 포함되었습니다. 3명은 폭발에 의해 즉사, 막내인 앨은 다음날 익사했고, 맏형 조지는 며칠 후 구명보트에서 사망하였습니다.

 

(설리번 5형제 아버지와 어머니)

결국 약 8일 후 형제를 제외하고 구조된 생존자는 약 10여명에 불과했습니다. 주노의 격침과 대규모 인명피해를 보고 받은 헐지 제독은 그 책임을 물어 후버 대령을 직위해제시켰습니다. 설리번 부모는 전사통보를 받지 못하고 단지 미 해군이 교전으로 인해 많은 함정이 침몰했다는 소문을 듣고 걱정이 들어 해군측에 물어보았지만 M.I.A.(Missing In Action, 교전 중 실종)통보만을 받고, 나중에야 루스벨트 대통령이 직접 쓴 전사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후에 설리번 형제를 추모하기 위해 미 군함의 이름으로 '설리번 형제'(The Sullivans)가 붙게 되었습니다. 초대 USS 설리번 형제는 플레처급 구축함 DD-537로 태평양 전쟁과 한국전쟁에 참전한 뒤 1965년에 퇴역하여 보존함 처리되었습니다. 2대 USS 설리번 형제는 알레이버크급
DDG-68로 1997년에 취역하여 아직 현역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로, 미군은 한 형제의 같은 부대나 함정의 근무를 철저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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