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1953년 대만을 점령하기 위해 창설된 중국의 해병대(해군 육전대)는 장비와 병력이 부실해 주로 근해에서만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고  이에 대만은 본토를 수복한다며 한때 2개 사단 규모의 해병대를 육성하다 냉전 후 9000명으로 감축한바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중국의
해병대는 6천명 수준의 여단 2개로 구성되어 있다가 남중국해의 마찰이 심화된 이후, 현재는 약 명까지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최근 중국은 대대적인 군 조직 개편을 통해 육군을 대거 감축하는 대신 해병대 병력을 대폭 늘린다고 합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이미 중국군 해병대가 2개 특전여단을 흡수해 병력을 기존의 2배인 2만 명으로 늘린데 이어 2018년초까지 10만명을 보유한 6개여단 체제로 확대한다고 합니다.

 

 

그동안 중국 해병대는 중국 본토의 주요 지점에서만 운용되었는데 이는 적은 병력 수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병력이 5배 이상 증강되기 때문에 다양한 해외 작전에 투사가 가능해지며, 이는 해외에 대한 무력 투사를 더욱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의사로도 받아들여 질 수 있어보입니다. 만약 중국 해군 해병대가 10만명이 될 경우 한국 해병대(2만8000명)는 전 세계 해병대 가우데 병력수 기준으로 순위가 미 해병대(18만명)에 이은 2위에서 3위로 떨어지게 됩니다.

 

 

또한 중국이 해병대 병력을 5배로 확대한다고 하자 일본과 대만은 이에 맞설 전력 강화를 검토중이라고 합니다. 특히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군사분쟁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은 중국이 해병대를 엄청난 숫자로 늘리는 것에 대응하기위해 앞으로 중국의 외곽 도서 침략에 대응하는 것을 목표로 섬 상륙, 수륙 양용 작전의 전술 전투능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중국은 방어용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에 반발해 한반도 유사시 바로 투입 가능한 해병대 사단을 올해 3월에 창설한 것으로 드러났었습니다. 중국의 북해함대 소속 해병대는 유사시 한반도 상륙작전 투입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일정 기간 부대 전환과 적응 훈련을 거치면 이들 함대는 수륙 양용 공격 능력도 갖추게 되었습니다.

 

 

중국은 상륙작전 등을 위해 헬리콥터 여러 대가 동시에 이착륙할 수 있는 자국산 초대형 강습상륙함을 건조하는 등 해군력을 키우는 데 각별히 공들이고 있습니다. 이는 시진핑이 대만과의 전쟁 가능성에 대비하고,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미국과 일본, 필리핀 등 주변국을 견제하면서 군사적 우위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깔려있습니다.

 

 

또한 미군이 남중국해 인근에서 군사훈련을 벌여 중국도 맞대응할 필요성을 느낀듯 합니다. 이에 우리 대한민국 해군의 경우 독도함(1만8800t급) 1척을 운용 중이며, 2번함은 현재 한진중공업에서 설계 중으로 2020년쯤 도입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체수송능력은 열악한 수준인지라, 미국의 도움 없이는 상륙작전 1회에 고작 천여명 정도를 투입할 수 밖에 없으며, 상륙시 한번에 투입가능한 전차 대수가 한손에 꼽을 정도 밖에 안된다는 점이 상당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숩나다. 독도함 기준으로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전차가 고작 2대뿐입니다.  

 

 

해병대의 상륙전력 구성 자체가 한미연합작전을 상정하고 구축된 것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그런지 대한민국 해병대는 우리 육군이나 공군과의 공조보다는 미 해병대나 미 해군과의 공조가 많은 편이며 오히려 이 쪽이 훨씬 빠르고 쉬운 편입니다. 그래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 예산이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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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항복으로 끝난 직후인 1918년 말엽 이후부터 승전국들은 전후처리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패전 국가들의 국가 해체와 국방력 약화, 새로운 국제질서 성립 등이 논의되는 과정에서도 즉각적이면서 실질적인 전리품으로서 승전 열강들이 탐내고 있던 것은 바로 독일 대양함대였습니다. 해전의 핵심이 여전히 거함거포주의이던 이 시기에, 독일이 보유한 온갖 종류의 전함들은 결코 가만히 둘 수 없는 막강한 전력이었습니다.

 

 

6개월여 기간이 지나 종전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협상 내용의 윤곽이 드러났는데 독일 대양함대는 영국 미국 프랑스 등 연합국이 각각 나눠갖기로 합의했었습니다. 특히 프랑스가 열성적이었는데, 전쟁 전에 만들어둔 주력함 70만톤 계획안이 전쟁으로 파탄난 것을 일거에 만회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독일 해군의 자존심은 결코 이를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영국 다음으로 세계 제2위의 막강한 수상함대 전력을 보유한 독일 해군은 승전국인 영국의 지시로 주력함대를 영국 본토 북단의 천혜의 군항 스캐퍼플로(Scapa Flow)로 이동시켰습니다. 독일 대양함대를 지휘하고 있던 루트비히 폰 로이터(Ludwig von Reuter) 제독은 영국 함대의 눈을 피해가며 억류된 모든 함정들에게 자침 준비를 지시하였습니다.

 

 

그리고 1919년 6월 21일, 스캐퍼플로의 영국 함대가 훈련을 위해 대대적으로 출항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예정대로 영국 함대가 출항하자 로이터 제독은 오전 10시 30분, Z 상황(자침)을 알리는 11호 명령을 내렸습니다. 명령을 수신한 독일 각 함의 잔존승무원들은 일제히 해수밸브를 열고 자침을 시작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영국 함대는 급하게 스캐퍼플로로 돌아와 자침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대부분의 배들은 해수가 가득 차서 해저에 착저하여 자침이 끝났거나 이미 해수가 너무 많이 들어와서 침몰을 막을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단 몇 시간만에, 당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강력한 해군 함대가 자침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소멸했습니다.

 


침몰한 전함만
카이저급 전함 5척, 쾨니히급 전함 4척, 바이에른급 전함 2척 총 11척이며 모두 하나같이 드레드노트급 전함으로 독일의 최신예함이었습니다. 특히 바이에른급은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에 버금가는 15인치 주포를 탑재한 신예 초드레드노트급 전함이라서 그 당시에도 매우 아까워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여기에 더해서
순양전함 5척, 순양함 8척과 구축함 50척도 같이 자침하면서 총 60여 척의 군함이 침몰하였고 그렇게 독일 대양함대는 소멸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 사건은 독일 국민들에게 깊은 상처와 분노를 안겼습니다. 그로부터 20년 후인 1939년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 해군은 대양함대의 치욕을 갚고자 가장 먼저 스캐퍼플로를 공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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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12월 7일 일본 해군의 진주만 기습은 미국을 마침내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진주만을 상기하라"(Remember Pearl Harbor)는 절규는 미국인들의 애국심에 불을 붙였고, 복수심에 불타는 젊은이들이 전국의 모병소에 몰려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젊은이들 속에 아이오와주 워털루 출신의 설리반 5형제도 있었습니다. 설리번 형제들에게 진주만 습격은 더욱 충격적인 일이었는데 이들의 유일한 누이, 제느비에브의 약혼자 윌리엄 볼이 진주만에서 침몰한 전함 아이오와에 타고 있었습니다. 이미 해군에서 복무한 전력이 있는 맏형 조지(28), 차남 프랭크(26)와 삼남 조셉(23), 사남 매디슨(22), 그리고 막내인 알버트(20)까지 모두 해군에 자원 입대를 신청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미 해군 규정에는 가족은 같은 함정에 배치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맏형 조지는 해군 장관 앞으로 편지를 씁니다. "우리 형제는 언제나 함께였었고 함께 승리 할 것입니다" 편지를 받은 워싱턴의 해군성에서는 설리번 형제의 동반 입대가 멋진 선전 효과를 거둘 수 있겠다고 판단, 이를 허락 하였습니다.

 

 

그런데 1942년 11월 13일 새벽, 과달카날 해전에서 설리번 5형제가 타고 있던 주노 함은 교전 도중 일본 해군 구축함이 발사한 어뢰 중 1발에 뱃머리를 피격당했고, 수리를 위해 에스피리토 산토 항구로 철수하던 도중 일본 잠수함의 어뢰에 의해 탄약고가 대폭발, 침몰하였습니다. 철수하는 함대를 이끌던 후버 대령은 일본 잠수함이 득실거리는 바다에서의 구조활동은 무리라 판단했는지 주노의 구조를 포기하고 나머지 함대를 이끌고 그대로 에스피리토 산토 항구로 가버렸습니다.

 

 

당시 주노에서는 100여명의 승조원이 탈출했지만, 구조가 늦어진 결과, 대다수가 기아, 탈수, 상어의 공격으로 인해 숨졌습니다. 그런데 이 사망자들 중에 설리번 5형제가 모두 포함되었습니다. 3명은 폭발에 의해 즉사, 막내인 앨은 다음날 익사했고, 맏형 조지는 며칠 후 구명보트에서 사망하였습니다.

 

(설리번 5형제 아버지와 어머니)

결국 약 8일 후 형제를 제외하고 구조된 생존자는 약 10여명에 불과했습니다. 주노의 격침과 대규모 인명피해를 보고 받은 헐지 제독은 그 책임을 물어 후버 대령을 직위해제시켰습니다. 설리번 부모는 전사통보를 받지 못하고 단지 미 해군이 교전으로 인해 많은 함정이 침몰했다는 소문을 듣고 걱정이 들어 해군측에 물어보았지만 M.I.A.(Missing In Action, 교전 중 실종)통보만을 받고, 나중에야 루스벨트 대통령이 직접 쓴 전사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후에 설리번 형제를 추모하기 위해 미 군함의 이름으로 '설리번 형제'(The Sullivans)가 붙게 되었습니다. 초대 USS 설리번 형제는 플레처급 구축함 DD-537로 태평양 전쟁과 한국전쟁에 참전한 뒤 1965년에 퇴역하여 보존함 처리되었습니다. 2대 USS 설리번 형제는 알레이버크급
DDG-68로 1997년에 취역하여 아직 현역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로, 미군은 한 형제의 같은 부대나 함정의 근무를 철저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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