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한국전쟁은 북한의 도발로 시작 되었고 그 중 미국을 대표로 하는 많은 우방국들이 우리나라를 도우러 참전 하였습니다. 그런데 미군의 참전사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기타 참전국에 대한 기록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러한 많은 참전 우방들 중 하나인 캐나다의 한국전쟁 참전과 뜨거운 우정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캐나다는 영연방 참전국(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화국)의 일원으로 1950년 12월 1개 보병대대를 시작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하였습니다. 당시 캐나다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한국전쟁 지원자 모집광고를 보고 자신의 이름을 적어내었는데 당시 경쟁률이 엄청났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동안 최고 육군 1개 보병여단, 해군 1개 구축함전대 (구축함 3척), 공군 1개 수송대대 및 기타지원부대의 전력을 유지하였고 총 연인원 25,000 여 용사들이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특히, 영연방1사단의 일원으로 참여한 가평전투는 이들의 용맹함을 잘 보여준 전투였습니다.

 


참전 캐나다군중 뛰어난 용맹함을 보여 주었던지상군의 주력은 제25여단이였습니다. 기본 여단편제는 보병연대 1개, 포병연대 1개의 예하부대와 직할부대로서 기갑대대, 공병대대, 통신중대, 야전의무대, 군수지원대 및 기타부대로 구성 되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파견부대가 예하부대별로 약 1년 단위의 기간으로 로테이션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월남전, 동티모르, 이라크파병 같은 경우 부대는 그대로이고 병력이 로테이션 되는 것인데 캐나다군은 병력 및 부대를 함께 로테이션 시킨다는 점이었습니다.

 

(1954년 한국에 파견 된 캐나다군의 내용의 기사)

 

 

(1954년 캐나다군의 지원으로 집을 짓고, 보수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캐나다 제25여단은 연대규모의 보병 이외에도 오히려 여단 편제를 웃도는 상당한 전력의 포병과 기갑부대를 파견하여 공산군과 맞섰습니다. 포병과 기갑전력만 본다면 사단급 직할부대규모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1957년 7월 주한 캐나다 의무파견대 철수시까지 약 7여년을 대한민국에 주둔하였습니다. 그리고 캐나다는 정전기념일인7월 27일을 한국전쟁 참전군인의 날(day of Remembrance in Honour of Veterans of the Korean War)로 지정하여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캐나다 군인들을 기리는 날로 지정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에서 벌어진 캐나다군의 재밌는 이야기 하나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한국전쟁 1952년 추운 겨울, 한반도 중부를 흐르는 임진강에서 1950년 6월25일 발발한 한국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유엔군의 일원으로 한국을 지원한 캐나다군은 임진강 근처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의 살을 에는 추위는 캐나다의 겨울과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강물은 꽁꽁 얼어붙어 거대한 빙판을 이루었습니다.

 

언제 전투가 벌어질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서 캐나다의 젊은 병사들은 고국에서 즐겼던 아이스하키를 무척하고 싶었습니다. 1952년 서부전선에 주둔중인 캐나다 육군의 PPCLI 연대와 22연대는 임진강 얼음판에 하키링크를 만들었습니다. 살을 에는 겨울바람에도, 일촉즉발의 긴장에서 벗어나 젊은 병사들은 열기를 품어냈습니다. 그렇게 치열한 전장에서 벌인 하키 시합은 두고 두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됐습니다.

 

 

그리고 2015년 타와의 캐나디안 타이어 센터(CTC)에 대형 태극기와 캐나다 국기가 걸렸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PPCLI와 22연대가 재격돌한 것이였습니다. 그리고 이 경기에 한국인 선수들도 함께 참가하여 두 나라의 우정을 두텁게 했습니다. 오타와 세네이터스에서 활약했던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백지선 감독은 화상 인사를 통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한국과 캐나다가 결승에서 만나자고 덕담을 했습니다.

 

 

 

 

 

사실 캐나다군대 뿐만 아니라 수많은 젊은이가 당시에는 들어보지도 못한 이역만리 한국땅에 와서 피와 눈물을 뿌렸습니다. 한국전 쟁 당시 전투병 파병국가가 미국 외 15개국, 의료지원단 파견이 인도 외 4개국 그리고 기타 군수지원 국가가 쿠바(사탕 2천톤, 알콜1만 갤론, 혈청)외 18개국에 이르렀습니다.

 

(한국전쟁 참전한 캐나다 노병들의 현충원방문)

 

합하여 무려 40여 개국인데 당시의 UN 가입국이 60여 국가 내외 일 것으로 판단되므로 북한을 원조하던 국가까지 포함한다면 한국전쟁에 전 세계가 직간접적으로 관여되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생각보다 우리는 많은 나라들로부터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들의 도움을 절대 잊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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